여학생 (女生徒, 2006)
감독 : 오쿠 슈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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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에 눈을 뜰 때의 기분은 참 재미있다. 마치 숨바꼭질을 하느라 어두운 장롱 속에 몸을 웅크리고 조용히 숨어 있는데 술래가 다가와 "찾았다!"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장롱 문을 벌컥 열어젖힐 때의 기분 같다. 쏟아지는 눈부신 빛에 눈살을 찡그리고는 운 나쁜 타이밍을 탓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흐트러진 옷을 가다듬으며 쑥스럽게 장롱에서 나올 때의 묘하게 분하고 열 받는 느낌이랄까. 아니, 잠깐! 그런 느낌과도 조금 다르다. 뭐랄까,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느낌이다. 상자를 여니 작은 상자가 나와, 또 한 번 상자를 열면 그 안에서는 그보다 더 작은 상자가 나오고, 다시 또 상자를 열면 더더욱 작은 상자가 나오는 것이다. 그리고 그 작은 상자를 열면 또 상자가 나타나 그렇게 일고 여덟 개의 상자를 연 후 드디어 주사위 만한 작은 상자를 마지막으로 열었는데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허무함, 그런 것에 가깝다. 아침에 눈이 번쩍 뜨인다는 말은 거짓말이다. 몹시도 혼탁한 녹말 용액에서 서서히 녹말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로 올라올 때쯤 되어서야 겨우 피곤한 눈을 뜰 수 있는 것이다.
아침은 왠지 늘상 그저 그래서 재미가 없다. 슬픔이 가슴 가득 꾸역꾸역 올라와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난다. 아침에 보는 내 모습은 왜 그리도 못생겨 보이는 것일까? 다리도 너무 피곤하고 더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. 어젯밤 푹자지 못했기 때문일까? '아침'이 건강의 대명사란 말 따위는 거짓말이다. 아침은 나에게 늘상 지독한 회색빛 허무다. 그래서 아침이면 나는 항상 염세적이다. 한순간에 수많은 후회가 가슴을 가득 채워 날 몸부림치게 만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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